이타카의 트위터


이타카가 주창하는 새로운 장르 문학 - 이타카 네오 판타지 이타카 공지/이벤트

이타카가 주창하는 새로운 장르 문학



이타카 네오 판타지

(ITHACA Neo Fantasy)



1998년, 이영도가 쓴 드래곤 라자의 출현과 함께 우리는 용과 마법이 숨쉬는 세계와 만났다. 그 세계는 판타지라 불리우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전사들이 절망을 극복하는 용기를 보여주었고, 마법사들이 꿈을 현실로 태어나게 했으며, 요정과 드래곤들이 아름다운 낭만을 그려주는 세계였다.

90년대, IT의 급속한 성장은 작가들이 보다 쉽게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 작가들은 책을 내지 않고서도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었고, 그를 통해 무수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졌다. 판타지는 그 숱한 이야기 중에서도 독보적인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영도의 뒤를 이은 수많은 작가들이 판타지라는 세계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우리는 현실보다 아름다운 판타지라는 세계와 그 세계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에 열광했다.

하지만 지금 그 열광은 빠르게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판타지 장르문학이 퇴색되는 이유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 견해를 내놓았다. 대여점 탓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독자들의 탓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작가 자신이 자성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로 말하는 것은 제각각이었지만, 논하는 문제점은 언제나 하나였다. 출간되고 있는 판타지 소설들 대부분이 상투적이고 허술한 글들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수많은 목소리가 이러한 단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왔으면서도 아직도 뚜렷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못했다. 이 퇴색이 시장의 탓이든, 독자의 탓이든, 작가의 탓이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퇴색을 극복하고픈 바람은 결코 빛을 잃지 않았다.

우리는 환상으로 창조된 세계를 사랑했다. 현실과 다른, 그리고 현실보다 아름다운, 현실보다 진실한 판타지라는 세계, 그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우리는 소망했다. 그 이야기는 재미있기에, 그리고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치를 우리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곳의 이야기가 상투적이고 허술한 것이 되는 것을 원했던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변화를 원하고 있다. 판타지가 우리가 열광했던 모습을 되찾아주기를 소망하고 있다. 하지만 바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타카는 우리가 열광했던 판타지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에 열광했나를 돌이켜보았다.

가장 중시한 것은 밸런스였다. 가치만을 찾게되면, 이야기의 재미를 잃게 되고, 이야기의 재미만을 추구하면 무가치한 장르가 되기 쉽다. 판타지라는 장르가 가진 가능성을 하나라도 잃지 않아야 했다. 그렇기에 판타지가 지닌 가치와 매력, 두가지 모두를 염두에 두고 생각했다.



판타지란 현실보다 드라마틱한 세계이다. 그곳은 회구적인 낭만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전사의 열정, 마법사의 몽환, 요정같은 환상 속 존재들의 향연이 펼쳐지며, 그곳에서 현실의 메마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협적이지만 달콤한 모험과 서사시적인 삶이 현실의 자리를 대신한다.

우리는 이 판타지라는 세계가 지닌 현실보다 아름다운 모습과 이야기에 반했다.

하지만 판타지는 단지 허구 속의 낭만을 보여주기만 하는 세계가 아니다. 판타지가 그려내는 허구 속의 낭만에는 현실에서 뽑아낸 진실이 담겨있다.

판타지의 새로운 장을 연 [반지의 제왕]의 작가 J.R.R 톨킨은 “일반적으로 현실 세계에서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암시적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실이라는 제 1 세계에서 그 상징으로서의 제 2 세계를 만들어 신화적인 진정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판타지”(도쿄에서 판타지를 읽다:히카와 레이코 p41 발췌)라고 했다.

판타지는 단순히 허구만을 쫓는 장르가 아니라, 현대에 신화적 역할과 의미를 전해줄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을 톨킨은 말했다. 신화란 진실을 통해 현실을 이끄는 힘을 가진 서사다.

그렇기에 판타지가 그려내는 환상의 세계에는 단순한 공상이 아닌 진실이 담겨있다.

사랑이나 정의처럼, 인간이 허구 속에 담는 가치는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아무리 화려한 사랑을 말해도, 그것이 우리가 겪어온 현실로부터 아름답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사랑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도 의식적이 아닌, 무의식적인 직감에서부터 그렇게 느끼게 된다. 이렇듯 인간이 그려내는 허구란 현실이 길러낸 무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현실은 때때로 이런 현실로부터 길러진 무의식을 배신한다.

무의식은 사랑을 아름답다 말하는데도, 현실에서는 그 사랑이 추해질 때가 있다. 무의식은 정의가 올바르다하는 데도, 현실은 정의가 바르게 실현되지 못할 때가 있다. 현실은 이렇게 우리에게 전해준 가치임에도, 스스로 그 가치를 종종 부정한다. 그런 현실과 부딪혔을 때, 우리는 스스로의 안에서 무의식이 말하는 가치를 망각하고 상실해버린다.

판타지는 그런 무의식의 가치가 지닌 진실을 자신이 그려내는 세계 속에 담아낸다. 현실이 지켜가야 하는 가치와 이루어주었어야 하는 모습을 새로운 세계 속에 그려준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그대로 신화가 된다. 현실의 어둠에서 비롯된 아픔으로부터 현실이 우리에게 전해주었던 소중한 진실을 지켜갈 수 있는 힘을 전해준다.

뛰어난 판타지는 이렇듯 신화가 된다. 신화가 된 판타지는 우리에게 현실을 이끌어갈 힘을 전해준다.



우리가 열광했던 판타지는 이런 힘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판타지가 보여주었던 이러한 모습들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이타카는 이러한 판타지가 지닌 본연의 모습을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소망을 담아 ‘네오 판타지’라는 슬로건을 주창한다.

판타지만이 지니고 있던 또 다른 세계의 매력과 현실이 가리켜야할 진실을 전해주는 모습이 다시금 우리를 열광시켜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러한 바람은 어느 작가 한사람이나, 한 브랜드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것은 아니다. 상투적인 의미를 떠나 현실적인 입장에서 창작하는 이에서부터, 그 장르를 즐기는 이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흐름이 태어났을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희망이다.

하지만 이타카는 이 희망이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 믿고 있다. 과도한 열망이나 넘쳐흐르는 자신감에서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를 열광시켰던 판타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우리로 하여금 판타지에 다시 한번 열광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판타지는 본래 열광할 수밖에 없는 장르이므로.

- 이타카 ITHACA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ithaca09.egloos.com/tb/5106690 [도움말]

덧글

  • zerose 2009/09/08 15:49 # 답글

    보냈지만 응답없는 그대여어~.
  • 이타카 2009/09/08 17:52 #

    원고 심사 기간은 한달에서 두 달 정도 걸리며, 스케줄상 그보다 더 늦어지는 일도 있습니다. 또한 모든 투고자분들께 일일이 연락드릴 수는 없으므로 편집부에서는 검토 후 선정된 몇몇 분께만 연락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 점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독자 2009/09/08 17:03 # 삭제 답글

    이런거 주장할 시간에 윗분 메일 보내주고 고딕삼겹살등 연재가 늦어지는것에 대해서
    블로그에 업로드 해주는게 서로에게 유익하다고 보는데요

    네오 판타지니 뭐니 말장난 같은 브랜드 네이밍 정하는것 보다 컨텐츠에 더 신경써주시는게 어떻습니까?
  • wtf 2009/09/08 17:06 # 삭제 답글

    시장의 탓이던, 작가의 탓이던, 독자의 탓이던
    -> 시장 탓이든, 작가 탓이든, 독자 탓이든
  • 이타카 2009/09/08 17:49 #

    편집부에서 미처 못 잡고 넘어간 부분이군요. 지적 감사드립니다. 수정했습니다.
  • 아크 2009/09/08 17:55 # 답글

    이타카 브랜드의 번성을 기원합니다.
  • 송정의촌놈 2009/09/08 18:56 # 답글

    ㅇㅅㅇ 이타카 브랜드의 번성을 기원합니다^^
  • sky 2009/09/08 21:53 # 답글

    글이 엉터리쟈나요^^

    귀여니의 글이 스테디셀러가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아닐런지요

    십여년 갈고닦은 내공이 있어야만 제대로된 작품이 나오는데
    지금은 사실상의 습작을 작품이라고 출간하고 하니
    누가 돈주고 사서 보겠어요^^;

    더우기 작가층도 너무 어려서 삶의 깊은 맛을 통찰하는 글을 쓰지 못하고
    피상적인 감정과 감동에만 몰입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경우 청소년층은 쉽게 열광하고 좋아하지만
    그들이 20대가 되면 돈내고 사보진 않게되고
    30대 이상이 되면 더욱 멀어지게 되는 결과를 낳겠지요


    작가의 질이 낮은 것이 첫 번째 원인이라고 보입니다.

    정말 안타깝게도 잘못하면 만년 B급 문화로 남을지도 모르구요.
    만화방 무협지처럼요.


    상투적인 설정과 예측가능한 전개와 결말 보다는
    좀 더 깊은 경험, 삶에 대한 통찰, 인간에 대한 애정... 이런 것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이우혁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 훌륭한 작가였지요


    그리고 이영도 이전에도 통신작가들은 무척 많았습니다.
    90년대 초중반 사설 BBS에서 활약하던 그들을 잊지 말아주세요~


덧글 입력 영역